[트럼프 관세전쟁] 中·加·멕시코에 관세폭탄…통상질서 재편·무역전쟁 서막
기사 작성일 : 2025-02-01 12:01:00

행정명령에 서명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 AFP=. 재판매 및 DB 금지]

(워싱턴= 박성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중국과 캐나다, 멕시코에 대해 2월 1일부터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것은 취임 열하루 만에 집권 2기 '관세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취재진이 "중국, 캐나다, 멕시코가 내일(1일) 관세 시행을 막기 위해 오늘 밤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나"라고 묻자 "없다. 지금 당장은 없다. 협상 도구는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이는 캐나다·멕시코에 25%의 관세를,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계획대로 2월 1일에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선 때부터 관세를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 등으로 표현하며 재집권 시 무차별 '관세 카드'를 휘두르겠다는 선전포고했던 것을 망설임 없이 실행하겠다고 거듭 천명한 셈이다.

일단 가장 먼저 관세를 부과할 대상은 이들 3개국에 그쳤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관세 부과로 인한 글로벌 무역전쟁의 서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개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개월 내에 철강·알루미늄·의약품·반도체 등에도 관세를 부과하고, 오는 2월 18일께는 원유와 천연가스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면 전면적인 관세 도입을 시사했다.

또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이처럼 신(新)고립주의로 나아가는 트럼프발(發)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세계의 자유무역주의 질서는 훼손되고, 보호무역 기조가 거세지면서 주요 경제권역 간 무역 충돌은 한층 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 AFP=. 재판매 및 DB 금지]

◇ 美우선주의·중국발 안보 위기가 배경…'자유무역' 상징 WTO 체제 붕괴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그의 국정운영 핵심 기조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기반한다.

그간 미국은 자유무역 확대 기조를 대체로 유지해 왔지만, 이것이 심각한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고 미국 내 제조업을 쇠퇴시킨 원인으로 일각에서는 주장해왔다.

특히 중산층과 노동 계층이 심각한 피해를 본 반면 다른 나라의 배만 불렸다는 비판이 미국 내에서 힘을 받으면서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켜 재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시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인식 퍼져나갔다.

또 중국처럼 보조금이나 지원금 등 정부의 개입으로 값싼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무역이 아니며 이에 대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갔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문제의식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미중 간 패권 경쟁 구도가 더욱 뚜렷해진 상황에서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경쟁에서 중국의 맹추격을 허용했다는 안보 위기감도 관세 부과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무역 불균형 해소와 중국 견제를 위해 던진 관세 카드는 결국 글로벌 무역전쟁 확대와 경제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우선 중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이번에 관세 표적이 된 국가들이 미국의 조치에 맞서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벼르는 등 '그냥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여기에 향후 미국의 관세폭탄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나라들까지 미국을 상대로 한 '맞불 관세'를 준비하는 등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한 비상대책을 강구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동안 이들 3개국뿐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도 관세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왔다.

취임일인 20일에는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 각서를 통해 미국 기업에 차별적 세금을 부과하면 상대국 기업 등에 대한 보복성 과세로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이튿날 기자회견에서는 유럽연합(EU)을 겨냥해 무역 적자 문제를 거론하며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지난 23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화상 연설을 통해 "전 세계 기업들에 대한 내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다. 미국에 와서 제품을 만들라"며 "하지만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면 다양한 금액의 관세를 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날도 EU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를 묻자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absolutely)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고율의 관세 탓에 미국을 상대로 수출길이 막힌 국가가 다른 나라로의 수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무역 충돌이 전 세계로 확대되는 악순환이 생길 수도 있다.

이미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이에 대한 맞불 조치로 중국이 EU산 제품에 반덤핑 조사를 개시한 사례가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럴 경우 결국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표방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존립부터 흔들리고, 기존의 무역·통상 질서가 크게 훼손되면서 재편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 교역 질서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WTO 체제는 출범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중국과의 관세를 둘러싼 일전을 치르면서 어느 정도 기틀이 흔들린 바 있다.

미국은 지난 2019년 WTO의 분쟁 처리 절차를 담당하는 상소기구 위원 선임 승인을 거부, 무역분쟁 상소기구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 AFP=. 재판매 및 DB 금지]

◇ 비무역 이슈 해결에도 '관세 무기화'…동맹국 한국도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안보·경제 패권을 두고 다투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지목되는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국경을 맞댄 이웃인 캐나다와 멕시코도 관세 부과 대상으로 삼은 것은 동맹도 그의 관세 폭탄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는 무역 불균형뿐 아니라 국경 문제도 관세 부과 이유로 거론해왔다.

국경을 통해 불법 이민자가 들어오고 중국이 생산한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이 유입되고 있지만, 두 나라가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나라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예고에 국경 문제나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협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잘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캐나다나 멕시코는 미국의 관세 위협에 보복 관세를 준비하고 있지만,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캐나다의 자동차나 목재가 필요하지 않고, 식품도 필요 없다. 미국에서도 같은 제품이 생산된다"며 무역 보복을 당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결국 관세부과로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미국보다 상대국이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이런 인식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거대한 소비시장을 지렛대 삼아 무역이외 다른 이슈에 대해서도 관세정책을 통해 해결을 압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관세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감세 등 다른 대선 공약을 실현하는 자금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이러한 '관세의 무기화'는 최근 불법 이민자 추방 문제를 둘러싼 콜롬비아와의 마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콜롬비아 국적 불법 이민자를 태운 미 군용기의 착륙을 콜롬비아 당국이 승인하지 않자 고율 관세 부과 등 즉각적인 보복에 나섰고, 9시간 만에 콜롬비아 측의 완전한 굴복을 끌어냈다.

동맹국이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콜롬비아를 상대로도 이처럼 억압적이고 가혹한 제재가 나온 터라 한국도 '트럼프 관세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역시 미국과 동맹이자 FTA를 체결한 한국은 사상 최대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이런 문제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미 재무부로부터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됐다.

여기에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 무임승차론' 비판 대상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원)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연방 하원 공화당 행사에서 미국 기업 월풀이 한국 기업의 세탁기 덤핑 때문에 공장을 닫을 지경이었다면서 집권 1기인 2017년 6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조사를 시작해 이듬해 1월 50%의 관세를 부과했던 것을 자랑삼아 언급하기도 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대해 수개월 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혀 한국을 겨냥한 거센 '관세 공세'를 예고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