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에 K중기·식품·의류·화장품 대책마련 분주
기사 작성일 : 2025-02-05 12:00:16

성혜미 전성훈 신선미 강애란 차민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을 붙인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수출 중소기업들과 K식품·패션·화장품 기업들이 미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기업은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 국가와 품목 등이 어떻게 될지를 주시하면서 미국 내 생산을 최대로 늘리거나 고관세 부과 국가를 피해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 전략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미국 정부는 전날부터 중국에 10%의 추가 보편관세를 부과했고,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는 25%의 전면 관세 시행을 한 달간 유예하기로 했다. 미국은 유럽연합(EU)을 향해서도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국내 산업계에선 대미(對美) 흑자 8위국인 우리나라도 미국의 관세 압박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이 보편관세를 부과하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 등의 방법으로 통상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작된 트럼프 '관세 전쟁' 한국도 영향권


(부산= 강선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로 한국도 트럼프 '관세 전쟁'의 영향권에 있다는 우려가 가시화하고 있다. 사진은 3일 오전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쌓여있는 모습. 2025.2.3

◇ 중소기업 "대기업 납품 물량 줄면 그대로 타격"

미국의 관세전쟁 대상이 된 중국·캐나다·멕시코에 진출한 대기업에 자동차부품이나 전자부품 등을 납품하거나 중간재를 수출하는 중소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해당 대기업이 어떤 전략적인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 있어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생산 물량을 축소하거나 사업을 접으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경우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중간재 수출을 많이 하고 있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구·주방용품 등 생활산업 중소기업은 당장 큰 영향은 없지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생산공장을 옮긴 주방기구 업체 관계자는 "관세 이슈 전에 공장을 옮겼지만, 아직 중국에 공장이 남아있는 업체들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3일 오영주 장관 주재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관련 실·국장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전날 미국의 관세부과 대상국에 진출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헬프데스크'를 운영하고 불가피한 생산 조정으로 국내로 되돌아오는 '유턴기업'에 대한 지원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 식품업계, '수출세 꺾일까' 촉각…미국에 생산공장

식품업계는 현재까지 발표된 미국 관세 정책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앞으로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으로의 식품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산 제품에 대해서도 관세 장벽을 높이면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농식품 분야 수출액 1위 국가다. 작년 미국으로의 농식품 수출액은 15억9천만달러(약 2조3천억원)로 전년보다 21%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불닭볶음면으로 'K-라면 열풍'을 이끌어 온 삼양식품[003230]의 경우 미국 현지 공장 없이 국내에서 100%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어서 관세 정책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관세에 따라 가격을 인상하거나 인상분을 자체 흡수하는 등 가격 정책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내 생산기지를 건설하지 않는 한,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종가' 김치로 미국에서도 잘 알려진 대상[001680]도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김치는 현재 비관세 품목이지만,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상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김치를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도 상당하다.

오리온[271560]은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CJ제일제당[097950]과 SPC그룹은 각각 미국 시장 수요에 대응해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CJ제일제당은 자회사인 슈완스를 통해 사우스다코타에 오는 2027년 아시안 푸드 신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초기 투자 금액은 약 7천억원 규모다.

SPC그룹은 1억6천만달러(약 2천300억원)를 투자해 텍사스에 제빵공장을 건립하기로 했다.


불닭 수출 호조…삼양 매출↑


강민지 기자 = 삼양식품이 불닭 수출 호조에 힘입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매출이 1조2천억원을 넘어서면서 작년 한 해 실적을 뛰어넘었다. 사진은 15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2024.11.15

◇ K패션기업 "생산기지 다변화"…화장품기업 "미국 생산 확대"

미국 정부의 추가 관세 부과 국으로예상되는 베트남이나 과테말라 등에 제조 시설을 둔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들도 촉각을 주시하고 있다.

국내 의류 OEM 업체들은 지금까지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에 생산 거점을 만들어 운영해왔다.

한세실업[105630]은 베트남,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에 진출해있다. 영원무역[111770]은 방글라데시, 베트남, 엘살바도르 등에 생산설비를 운영 중이다.

한세실업과 영원무역의 전체 수출 물량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85%, 35% 수준이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베트남을 대체할 공장으로 인도네시아와 미얀마가 있다"며 "지난해 인수한 미국 섬유 제조 기업 텍솔리니를 통해 트럼프 정부가 선호하는 '메이드 인 USA' 제품을 만드는 등 다양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영원무역은 미국의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발 빠르게 이동해 하청공장을 운영하고 바이어와 긴밀하게 협의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화장품업체들도 미국 관세 인상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미국으로 수출되는 국내 화장품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미국은 작년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액 순위 2위(19억달러·2조7천억원)에 올랐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갖춘 화장품 OEM 기업들은 현지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한국콜마[161890]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1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올해 상반기 2공장도 완공할 예정이다.

코스맥스[192820] 역시 미국 동부 뉴저지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국내 OEM 화장품 회사에는 미국 현지 생산 문의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K-뷰티 제품은 가성비가 좋다는 인식도 있지만 소비자 맞춤형 제품을 선보이는 등의 강점도 있다"며 "가격이 K-뷰티 제품에 대한 수요 탄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관세보다 고환율 영향에 더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물품을 들여오는 내수 산업 특성상 아직은 뚜렷한 이상 동향은 없다"면서도 "관세 전쟁이 확대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별 대응 계획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커머스 업계는 미·중 관세 전쟁으로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계 3대 플랫폼의 한국 시장 공세가 격화하지 않을지 우려한다.

관세 부과 이후 직간접적으로 미국 판로가 제한되면 우회로로 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물량 공세가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커머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플랫폼으로선 늘어나는 재고를 소진하고자 어떻게든 대체 시장을 찾으려 할 것"이라며 "지리적으로 가깝고 초저가 상품 수요가 높은 한국이 공략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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