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메커니즘 이용해 민주주의 방해하는 그들…'다보스맨'
기사 작성일 : 2025-02-05 12:00:19

다보스포럼


[EPA=]

송광호 기자 =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적어도 신자유주의가 태동한 1970년대 말 이후 빈익빈 부익부가 굳어진 것은 물론, 나아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신간 '다보스맨'에 인용된 통계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미국인 중 가장 부유한 1%는 총 21조 달러의 부를 축적했다. 같은 기간 하위 절반에 속하는 가구의 재산은 9천억 달러 감소했다. 1978년 이후 기업 임원 총보수는 900%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미국 일반 노동자 임금은 12% 미만밖에 상승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명의 총자산은 가장 가난한 85개국의 경제 규모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이 책의 저자이자 뉴욕타임스 경제 전문기자인 피터 S. 굿맨은 이 같은 양극화의 원인으로 '다보스맨'을 지목한다. 다보스맨은 정치학자 새뮤엘 헌팅턴이 2004년에 만든 용어다. 세계화 덕택에 부유해져 사실상 무국적자가 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즉, 쌓은 부와 이익이 여러 나라를 넘나들고, 소유한 부동산과 요트가 여러 대륙에 흩어져 있어 특정 국가에 충성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다보스포럼 반대 시위


[EPA=]

이들은 스위스에서 매년 열리는 다보스포럼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다보스포럼은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모임에 불과하다. 주요 기업을 운영하는 이른바 다보스맨들은 세계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력자들을 초청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의 규칙을 정한다.

"(다보스포럼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로비 활동이다.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비공개로 모여 전 세계를 위한 규칙을 정한다."

책에 따르면 다보스맨들은 막대한 로비자금을 활용해 "정부를 악마화하고", 민영화를 해결책으로 받아들여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손에 공공재를 맡기도록 정치인을 유도했다. 긴축재정을 미덕으로 포장해 교육, 주택, 의료 서비스를 삭감시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특히 부유층과 대기업에 감세 혜택을 주면 모든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생각, 즉 '우주적 거짓말'"인 낙수 효과론을 퍼뜨렸다. 그러나 감세 등을 통한 대기업과 부유층의 늘어난 이윤이 중산층 이하로 흘러 내려간다는 낙수효과는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감세 정책 속에서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대신 돈은 위로 흘러 수천 명의 부유한 사람들의 배만 불렸을 뿐이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회장


[위키피디아 캡처]

오히려 낙수효과의 반대인 부자 증세가 경제발전에 도움을 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0년 동안 미국 정부는 부유층에 70%가 넘는 세율을 부과했고, 이는 연평균 3.7%라는 강력한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성장의 과실은 고스란히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강력한 소비를 이끌어 경제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했다. 저자가 양극화 해소로 부유세 등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이유다.

아울러 세금에 대한 철저한 추적조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보스맨은 겉으로 불우이웃돕기와 환경기금 마련 등 커다란 자선 행사를 진행하지만, 뒤로는 막대한 수익을 조세회피처를 활용해 빼돌린다. 가령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회장은 노숙자 문제를 완화하고 어린이를 위한 의료서비스 확대를 위해 2018년 700만달러를 기부했지만, 그의 회사는 그해 130억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리면서도 연방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세일즈포스가 싱가포르에서 스위스에 이르기까지 14개 세무 자회사를 분산 배치해 자금과 자산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회계상 마술을 부려 과세 대상 소득이 사라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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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지난 수십 년간 나타난 불평등은 "대부분 억만장자 계급이 로비스트를 동원해 세금을 회피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든 결과"라고 비판한다.

"다보스맨은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인류의 진보에 관한 이야기로 소개하며, 부를 공유하도록 강제하는 노력을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묘사한다. 그는 민주주의 메커니즘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이상을 방해한다."

진지. 김하범 옮김. 5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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