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계엄 해제 현장 목도…국제 신평사 韓신인도 일단 합격점
기사 작성일 : 2025-02-09 08:00:17

피치 한국 신용등급 AA- (PG)


[박은주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세종= 이준서 기자 = 세계 주요 방송사들이 일제히 서울 비상계엄 현장을 생중계한 지난해 12월 3일 밤. 공교롭게도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Fitch)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국가신용등급 책임자들이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피치의 제레미 주크(Jeremy Zook)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담당 이사는 전날부터 사흘간 예정된 연례협의를 위해 방한 중이었다. S&P 킴엥 탄(KimEng Tan) 국가신용등급 아태총괄(전무)은 이튿날 여의도에서 개최되는 컨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재정당국자들이 곧바로 이들을 대면 접촉해서 한국 경제시스템에 관해 설명할 수 있던 것은 이런 우연 덕분이었다.

한 당국자는 9일 "신용평가 담당자들이 계엄 당일 서울에서 상황을 직접 경험한 것은 우리로서는 기회였다"며 "전화통화나 보고서로 한국의 경제시스템에 문제가 없다고 설득하는 것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전했다.

S&P 킴엥 탄 총괄은 기획재정부 담당자와 즉석 면담을 했고, 피치 측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로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는 서울의 분위기를 체감하고 돌아갔다.

탄 총괄은 당시 여의도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비상계엄이 몇시간 만에 해제됐고 한국의 제도적 기반이 탄탄하다. 한국의 신용등급을 바꿀 실질적 사유가 없다"고 밝혔다. 3대 신평가 중에서는 첫 '포스트-계엄' 메시지였다.

비상계엄 후폭풍 와중에 비공개 연례협의를 끝마친 피치의 결과물은 두 달 만에 나왔다.

피치는 지난 6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고,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Stable)으로 유지했다.

피치의 발표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첫 번째 공식 신용등급 발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경고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불식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S&P와 무디스의 신용등급 평가도 종전 수준을 유지하는 쪽으로 발표될 것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이유다.

S&P는 통상 3~4월에 연례협의를 하고 신용등급 보고서를 5~7월께 낸다. 무디스는 연례협의 시점이 유동적인데 올해 하반기 이후에 신용등급평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S&P 금융기업 신용평가 기관


편집 김민준

대외신인도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 경제당국은 피치의 평가를 고무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신평사 인사들이 계엄 당시 서울의 시시각각 상황 전개를 목격할 수 있었던 게 우연의 일치였다면, 이후로 숨 가쁘게 전개된 정국상황 설명은 정부당국의 몫이었다.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틀 전인 12월 12일 3대 신평사의 국가신용등급 글로벌총괄과 화상 면담을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1월 9일에도 추가 면담을 했다.

첫 면담에서 탄핵심판절차 및 심판결과에 따른 대선 일정 등 정치적 타임라인에 관한 질문이 비중 있게 나왔다면, 두 번째 면담에서는 국무회의 및 여·야·정 국정협의회 등 국정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후문이다.

권한대행 체제가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르면서, 정치 스케줄과는 별개로 안정적인 경제운용 여부로 시선이 쏠린 셈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와 화상회의 하는 최상목 부총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임스 롱스돈 국제신용평가사 Fitch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2024.12.13 [기재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각급 부처 차원에서도 전방위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기재부, 외교부, 산업부, 금융위, 한국은행 등 17개가 넘는 부처·기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국가신용등급 공동대응 협의회'가 출범했다.

최종구 국제금융협력대사는 11일부터 홍콩·싱가포르에서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담당하는 3대 신평사 인사들과 연쇄 면담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 권한대행은 신평사를 비롯해 각국 재무부, 국제기구, 해외투자자들을 상대로 한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분리돼 있음을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며 "해외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안심하기는 이른 편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탄핵심판의 예상스케줄을 뛰어넘는 장기적 정치불안이다. 피치 역시 정치적 교착상태의 장기화를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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