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 성동여실도 남녀공학…추억이 된 女商시대
기사 작성일 : 2025-02-12 12:00:38

김재현 선임기자 = 전쟁 후 춥고 배고팠던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 잘하는 어린 딸은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올 수'(all 秀)가 적힌 통지표를 받아오는 날엔 "우리 딸 장하네"라고 칭찬하면서 중학교 보내기도 어려운 형편 탓에 부모의 가슴 속엔 미안함만 쌓였다. 하지만 아들이라면 땡빚을 내서라도 공부시킨 남존여비의 세상이었다. 대신 딸들은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부잣집 '가정부'나 '공순이'로 일해야 했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가정에선 딸을 상고에 보냈다. 하루라도 일찍 직장을 구해 집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부모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올해 남녀공학 전환하는 성동여실(성동글로벌경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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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집이라도 대학 가는 게 쉽지 않았던 입시 환경도 여성의 대학 진학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가지만, 콩나물 교실이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해 4년제 대학 진학률(입학/출생자 수)은 20% 안팎에 불과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려면 '연합고사'를 통과해야 했는데, 떨어지면 재수하거나 야간반을 가고, 그것도 안 되면 비정규 '전수학교'로 진학했다. 그렇기에 여성에게 있어 상고 진학은 훌륭한 대안이었다.

고도성장기에 여상은 취업과 직결됐다. 커트라인이 높은 여상은 졸업 전 은행과 대기업으로 입도선매 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서울에선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던 서울여상을 비롯해 동구여상과 성동여자실업고(성동여실)에 수재가 몰렸다. 서울여상에 합격자를 내는 중학교 정문에선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렸던 시절이었다.

2년 전 동구여상(현 동구고)에 이어 성동여실(현 성동글로벌경영고)이 남녀 공학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이다. 이 학교 이은경 교감에 따르면 올해 1학년 신입생 115명 가운데 30명을 남학생으로 받았는데, 학령 인구 감소와 고졸 채용 감소로 학생 충원이 어려워진 영향이 크다고 한다. 패션디자인과 수의사 보조 등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업종에 남학생의 관심이 커진 것도 공학 전환을 앞당긴 요인으로 학교 측은 보고 있다.


2003년, 증권거래소에 견학 나온 서울여상 학생들


종합주가지수가 754.34로 마감된 가운데 증권거래소에 견학 나온 서울여상 학생들이 종목시세판을 보며 웃고 있다./배재만/경제/ 2003.8.21.

이제는 일반계 명문 여고의 공학 전환 여부에 관심이 모아질 전망이다. 과거 비평준화 시절 서울에선 경기, 이화, 숙명 '빅 3'와 함께 창덕, 진명, 정신여고가 명문으로 불렸는데, 이들 학교가 부촌인 강남과 목동에 있거나 자사고라서 당분간 간판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결국 명문 여상 시대가 사실상 종언을 고한 것이 부의 쏠림 탓인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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