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교 첫돌' 쿠바에 변화 물결…태극기 휘날리고 한국마트 성황
기사 작성일 : 2025-02-13 11:01:00

김치 구매하는 쿠바 주민 '엄지척'


[촬영 이재림 특파원]

(아바나= 이재림 특파원 = 1728년 개교한 아바나 대학(Universidad de La Habana)은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에서 가장 역사 깊은 공립 고등 교육기관으로 꼽힌다.

의학부가 특히 유명한데,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쿠바 정부 정책에 따라 멕시코를 비롯한 다른 중남미에 파견돼 의술을 전파하기도 한다.

현지 주민들에게도 자부심처럼 여겨지는 아바나대 의과대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출입문을 벗어나 골목을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단연 눈에 띌 정도로 방문객이 붐비는 상점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쿠바 역사상 한국 식품을 주로 취급하는 최초의 가게"라는 'K마트'다.

한국과 쿠바 수교 1주년(2월 14일)을 이틀 앞둔 12일(현지시간) 특파원 부임지인 멕시코시티에서 항공편으로 2시간 30분 만에 아바나에 도착한 뒤 곧장 찾아가 본 이 마트에는 한국 먹거리를 구입하려는 현지 주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쿠바 'K마트'를 찾은 주민들


[촬영 이재림 특파원]

마치 백화점 명품 숍에 온 듯 종업원이 "내부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문 앞에 서서 입장 가능 고객 규모를 조절하는 진풍경도 목격됐다.

안에 들어가 보니 남자 성인 키 높이의 선반에 소주, 라면, 음료수 같은 한국 음식이 진열돼 있었다.

외국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는 이른바 '커피 믹스'와 간단한 양념류도 보였다.

마트 안에서 가장 분주해 보이는 계산대 옆에는 면류를 직접 조리해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도록 길쭉한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딸과 함께 매운 불닭 라면을 먹던 아바나 주민 에일리 씨는 "누군가 올려놓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찾아왔다"며 "마치 TV에서 보던 서울 편의점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옆에선 에밀리오 씨가 작은 용기에 들어있는 김치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는 "이번이 내 인생의 김치 첫 도전"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여줬다.


아이돌 굿즈 살피며 좋아하는 쿠바 주민


[촬영 이재림 특파원]

반세기 넘게 북한의 '형제국'이었던 쿠바는 그간 한국과 여간해서는 가까워질 수 없는 먼 나라로만 여겨졌지만, 지난해 한국·쿠바 유엔대표부가 뉴욕에서 외교 공한을 교환하며 수교를 공식화한 것을 계기로 아바나에서는 더디지만, 분명한 변화의 물결을 느낄 수 있다.

쿠바 K마트 대표이자 현지 교민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정훈(53) 쿠바한인회장은 "라면, 소주, 커피, 김, 과자류 등 모든 한국 제품이 물건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잘 팔린다"며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은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찾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와 인터뷰하는 정훈 쿠바한인회장


[촬영 이재림 특파원]

그는 단순히 마트보다는 한국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 곳곳에는 현지 한류 팬이라면 눈길을 멈출 수밖에 없어 보이는 포스터와 그림들이 벽면에 붙어 있기도 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쿠바 아바나무역관 부관장을 지낸 정훈 회장은 "쿠바 내 규정을 엄격히 준수하면서 영업하고 있는데, 입소문이 나서 벌써 2호점 개점을 준비 중"이라며 "꾸준한 제품 공급이 쉽지는 않지만, 쿠바 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부연했다.


주쿠바 한국대사관이 입주한 건물 외벽에 붙은 태극기


[촬영 이재림 특파원]

쿠바 도심 도로에는 형형색색 클래식 자동차들 넘어 현대차와 기아의 중소형 승용차가 여전히 쉽게 눈에 들어왔다.

고장 나 멈춘 호텔 시계 옆에는 삼성과 LG 가전제품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거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 등 형태로 쿠바에 일찌감치 들여온 것들인데, 중고 시장에서 여전히 인기가 많다고 호텔 직원은 귀띔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아바나에서 '한국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변화상은 또 있다.

수개월간의 준비 끝에 지난달 문을 연 주쿠바 한국 대사관이다.

대사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개칭 명령'으로 국제사회 관심을 받는 멕시코만(미국만)을 볼 수 있는 미라마르 무역센터에 지난달 둥지를 틀었다.


쿠바 아바나 한 건물 앞에 주차된 차량들


[촬영 이재림 특파원]

이곳에는 쿠바 국영 통신사 및 주요 항공사 사무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코트라 아바나 무역관도 입주해 있고, 그리스를 비롯한 재외공관도 근처에 있다.

오후 늦게 도착한 대사관 건물 외벽에는 아바나 중심 도로 중 하나인 5번가 방향으로 태극기가 걸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 바로 아래엔 금색 바탕에 '대한민국 대사관'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호열 초대 주쿠바대사는 "쿠바를 방문하는 우리 국민은 물론, 쿠바에 거주 중인 우리 국민을 위한 영사 서비스를 확충하는 등 재외국민 보호를 강화할 것"이라며 "1921년 멕시코에서 카리브해를 건너온 한인 1세대의 후손들 권익 보호 활동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쿠바 대한민국대사관 현판


[촬영 이재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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