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아파트 폭발 사건으로 출동한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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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최인영 특파원 = "쾅!"
3일(현지시간) 오전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부의 아파트 단지 '알리에 파루사'에 사는 한국인 박모씨. 러시아에서 근무하는 한국 기업 주재원의 가족인 박씨는 아침 식사로 커피와 함께 빵에 초콜릿 크림을 발라 먹던 중 건물이 흔들리면서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박씨는 폭죽놀이나 공사 현장의 소리일 것으로 생각했다. 가끔 드론이나 미사일이 떨어진 것처럼 "쾅쾅"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대부분은 폭죽이 터지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최근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폭죽을 즐기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폭탄이 터지는 소리였다. 러시아 매체들은 이날 오전 이 아파트 단지 내 건물 1층 로비에서 폭탄이 터져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후 사망자가 2명으로 늘었으며 이들은 우크라이나 당국이 추적하던 친러시아 무장조직 '아르바트'의 지도자 아르멘 사르키샨(46)과 그의 경호원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이 사건을 치밀하게 계획된 암살로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사르키샨이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에 수배됐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지 매체들은 폭발 장치의 위력이 TNT 1㎏ 정도라고 전했다. 사르키샨은 다친 채 헬기로 이송돼 다리를 절단했으나 결국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매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지나다녔던 로비가 대형 사건 현장이 된 데 충격받았다고 했다. 그는 "현장을 확인하러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는데 한참 떨어진 곳인데도 1층에서 올라온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고, 후문과 연결된 비상계단으로만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문이 있는 1층 로비 접근이 차단된 것이다.
출입 제한된 러시아 모스크바 아파트
(모스크바= 최인영 특파원 =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북부 알리에 파루사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으로 경찰이 출동한 모습. 현지 언론은 이날 오전 이 아파트 1층에서 폭탄이 터져 친러시아 무장조직 지도자 아르멘 사르키샨(46)과 그의 경호원이 사망했으며 당국이 암살 사건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5.2.3
현장에는 수십명의 경찰과 구급대원, 탐지견들이 정문 앞에 모여 있었다. 폴리스라인이 쳐져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곳곳에 총을 든 경찰과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경찰차와 소방차,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헬리콥터도 잠시 등장했다.
폴리스라인 근처에는 러시아 기자들도 여러 명 모여있었다. 그들은 주민들에게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등을 물으며 인터뷰 요청을 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주민들은 멀리 보이는 사건 현장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아파트 단지 밖에 모여든 기자는 더 많았다. 외부인의 단지 내 출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거주민과 미리 출입 등록이 된 사람만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경찰은 이 단지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단지에서 가까운 쇼핑몰도 일시 폐쇄됐다.
총 6개 동으로 구성된 이 단지에는 주재원과 외교관 등 한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 지은 지 20여 년 된 오래된 아파트고 모스크바 시내와도 가깝지 않지만 '안전한 주거지'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3년째 우크라이나에서 '특별군사작전'을 벌이는 상황이어서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은 우리 국민 피해가 접수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높은 보안 수준을 갖춘 이 아파트에서 암살 추정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인 주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모스크바 아파트서 암살 추정 폭발 사건
(모스크바= 최인영 특파원 =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북부 알리에 파루사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으로 경찰이 출동한 모습. 현지 언론은 이날 오전 이 아파트 1층에서 폭탄이 터져 친러시아 무장조직 지도자 아르멘 사르키샨(46)과 그의 경호원이 사망했으며 당국이 암살 사건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5.2.3
박씨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난다"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체감하지 못했던 전장의 상황이 살갗으로 와닿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가족과 인근 호텔에서 지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역시 폭발 사건이 발생한 건물에 살고 있는 다른 기업 주재원 가족 이모씨도 아침에 '펑' 소리를 들었다면서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나중에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무서워서 내려가 보지는 못하고 계속 뉴스를 찾아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통행이 제한돼서 불편한 상황이지만 한국분들 피해가 없고 사건이 정리되고 있는 것 같아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 중"이라며 "오늘은 정말 러시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는 하루였다"고 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에서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김모씨는 "걱정돼서 관련 영상을 보니 늘 로비를 지키던 경비원 아저씨가 절뚝거리면서 걸어가는 것 같았다.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지인들도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단지 거주민들은 "지켜보고 있던 범인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 구조대와 경찰을 제외하고는 이웃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건물은 4일 오전까지 모든 엘리베이터의 운행이 중단되는 등 봉쇄가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