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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쿠바 대한민국대사관이 입주한 건물 외벽에 붙은 태극기
(아바나= 이재림 특파원 = 13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주쿠바 대한민국대사관이 입주한 건물 외벽에 붙은 태극기. 2025.2.14
(아바나= 이재림 특파원 = 올해 한국과의 수교 1주년을 맞은 쿠바는 체 게바라와 피델·라울 카스트로 형제의 좌파 혁명지로 유명한 카리브해 섬나라다.
강력한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라는 점도 잘 알려져 있다.
자유 속에서도 통제의 필요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외부에 쉽게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공직사회와 접촉하려는 순간부터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관료들이 개별적으로 공식 발언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특정 주제에 대한 의견을 내야 할 경우 정부 각료나 공무원들은 대부분 관영 매체를 통해 통일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언론들 역시 이 때문에 정부 보도자료나 사회관계망서비스, 국영TV 독점 취재 내용 재인용 등에 의존한다고 한다.
한국과 쿠바 수교 1주년에 대한 현지 정부의 공식 반응 역시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나왔다.
쿠바 외교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엑스에 "오늘 쿠바와 한국이 수교한 지 1주년이 됐다"며 "우리는 양국 간의 관계를 지속해 강화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재확인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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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를 위해 대기 중인 차들
(아바나= 이재림 특파원 = 15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의 주유소에 차들이 주유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5.2.16
비교적 짧은 이 게시글에는 접촉면을 늘리고 싶어 하면서도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하는 쿠바의 대(對)한국 외교 정책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오랫동안 소위 '형제국'이었던 북한과의 관계를 여전히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실제 쿠바 당국은 지난달 한국대사관 개관을 계기로 협력 확대에 대한 의지를 여러 경로로 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민간 영역에서의 교류 강화와 접점 찾기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5년 자생적으로 뭉친 쿠바 최대 한류 커뮤니티 '아르코르'(ARTCOR)는 올해 창립 10주년을 계기로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아르코르를 물심양면 돕고 있는 문윤미 쿠바 영사협력원은 "오는 22일 학술대회에 이어 4월에는 10주년 기념 행사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축제를 대규모로 개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3월부터 지역별 예선을 거쳐 10월에는 K팝 댄스 최종 결선 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참가자들이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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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르코르 창립 10주년 기념 포스터
[아르코르 제공. 아바나=. 재판매 및 DB 금지]
1959년 창립된 쿠바 뉴스통신사인 프렌사라티나는 양국 수교의 자양분 중 하나로 인정받는 아르코르를 조망한 최근 기사에서 "아르코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나 한국어,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기준점을 만들었다"며 "지금은 회원 수 1만6천명 넘는 전국 단위 단체로 성장했다"고 짚었다.
아르코르는 외국 관련 커뮤니티로서는 이례적으로 쿠바 정부로부터 사회 문화 프로젝트 단체로 정식 승인을 받기도 했다.
이호열 주쿠바 초대 한국대사는 "쿠바 외교부와의 소통은 원활한 상황"이라며 "쿠바 측은 다양한 계기에 경제, 문화, 과학기술, 스포츠, 관광 등 인적·물적 교류와 한국어 교육 확대 등 희망을 피력한 바 있어서, 앞으로 해당 분야를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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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열린 한식 수업
(아바나= 안토니오 김 쿠바 한인후손회장(왼쪽 두번째)이 15일(현지시간) 쿠바 한식 수업에 참석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오른쪽 세번째는 수업을 진행하는 문윤미 쿠바 영사협력원. 2025.2.17 [재판매 및 DB 금지]
1921년 3월 1세대 한인을 중심으로 쿠바에 뿌리를 내린 1천100여명의 후손 역시 지난해 양국 수교와 지난달 대사관 개관에 감격스러워했다.
독립유공자 김세원 선생의 손자인 안토니오 김(81) 쿠바 한인후손회장은 16일 에 "저는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며 "후손들은 그간 멕시코대사관을 통해 한국과 연결돼 있었지만, 이젠 현지에서 모든 일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반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의 딸인 마르타 임(임은희·86) 씨(전 마탄사스 종합대 교수)는 "쿠바 대사관 개관 때 저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며 쿠바에 발을 들였던 제 아버지와 다른 한인 선조를 떠올렸다"며 "쿠바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꿈이 이뤄지는 것을 보며 한국이 매우 가까이에 있다는 포근함을 느꼈다"고 했다.
임씨는 그러면서 "이런 역사적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는 것은 고무적이면서 행복한 일"이라며 한국 국민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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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쿠바 수교 1주년을 기념하는 쿠바 외교부 게시물
[쿠바 외교부 엑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