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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서 유럽 주요 지도자들 긴급 회동
(파리 AFP=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 도착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맞이하고 있다. 2025.02.17.
(파리·브뤼셀= 송진원 정빛나 특파원 =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단 행보에 맞서 유럽의 주요국 지도자들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긴급히 모였다.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덴마크·폴란드 정상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4시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에서 비공개 회동을 시작했다.
이날 회동은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전격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서양 동맹' 관계를 무시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나서기로 하자 화급히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유럽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방안, 종전 협상이 성사된 이후 우크라이나의 지속적 평화 보장 방안, 유럽의 자체 안보 강화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오는 24일 전쟁 발발 3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변함없는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것도 이번 긴급 회동의 목표 중 하나로 보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파리에 도착한 뒤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유럽의 안보가 전환점을 맞았다"며 "물론 우크라이나에 관한 것이지만, 우리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긴박한 사고방식이 필요하며 국방비 급증이 필요하다. 두 가지 모두가 지금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체 집행위원단은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찾아 지지 의지를 과시하기로 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상임의장도 엑스에 "이번 회의는 하나의 과정의 시작으로, 유럽의 평화와 안보에 헌신하는 모든 파트너가 지속해 참여할 것"이라며 "EU와 회원국들은 이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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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도착한 영국 총리
(파리 로이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 도착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2025.02.17.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파리로 출발하기 전 "국가 안보와 관련해 우리는 세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우크라이나 문제는 우리의 국가안보와도 관련 있기 때문에 유럽의 집단적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이날 유럽 지도자들에게 유럽의 방어 체계를 즉시 강화할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엑스를 통해 "유럽인들이 지금 국방비를 크게 지출하지 않으면 향후 더 큰 전쟁이 닥칠 때 10배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라며 유럽 각국이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테 프리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이날 발트·북유럽 진영을 대표해 참석했다면서 "새로운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러시아의 재무장이 초래되는 휴전은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 유럽 무기 생산 가속화,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과 함께 우크라이나군의 서방 무기 사용 제한 해제도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종전 협상이 성사될 경우 우크라이나에 유럽군 중심의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방법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자국군 직접 파병에 대한 각국의 견해차가 여전해 통일된 입장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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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독 정상 인사
(파리 로이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 도착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2025.02.17.
현재 EU 회원국 가운데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파병에 가장 적극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유럽군 파병론을 제안했고, 스타머 영국 총리는 전날 일간 텔래그래프 기고문에서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독일은 우크라이나 파병을 여전히 꺼린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dpa 통신에 분쟁이 아직 진행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유럽군이 참여하는 전후 시나리오를 논의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고 주장했다. 한 독일 정부 소식통도 이날 AFP 통신에 미국의 전면적 참여가 없는 평화유지군 파병엔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스크 폴란드 총리 역시 "폴란드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수단에 따라 인도주의적 노력과 군사적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며 "군대를 우크라이나 영토에 보낼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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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간 전화통화 기사 다룬 러시아 매체들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U 회원국 중 이날 파리 회동을 비판하는 진영도 있다.
친트럼프·친푸틴 성향인 헝가리의 씨야르토 페테르 외무장관은 "오늘 파리에서 친전쟁, 반트럼프, 불만에 가득 찬 유럽 지도자들이 모여 우크라이나의 평화 협정을 막으려 한다"며 "우리는 트럼프의 야망을,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도 이날 파리 회의에 EU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을 비판하며 특히 유럽군 파견 문제는 "EU가 관여할 수 없는 주제"라고 비판했다.
이날 회의는 비공개로 열리는 데다 EU 차원의 공식회의도 아니어서 논의 결과가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엘리제궁은 이날 회의 직전 마크롱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