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우크라이나 없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기사 작성일 : 2025-02-18 15:33:47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최재석 선임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됐다. 발발 3년이 다 된 이 전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을 계기로 급속도로 종전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취임 후 첫 통화에서 양국 간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을 끌어냈고, 그 첫 협상 무대가 18일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다. 그런데 정작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이번 협상에 초대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협상의 주도권을 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협상을 시작하는 모양새다.

종전 실무협상에는 미국 측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중동특사가 나서고,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 담당 보좌관이 참여한다. 미·러 정상 간 대면 회담도 조만간 열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시기에 대해 이달 16일 "매우 이른 시기에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활절인 오는 4월20일까지 휴전이 이뤄지길 원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지금으로선 실무협상안을 바탕으로 트럼프와 푸틴 간 '빅딜'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미·러 간 빅딜이 성사되더라도 관건은 우크라이나의 동의 여부다. 미국 측은 우크라이나도 종전 협상의 어느 시기에는 참여할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뺀 협상은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유럽도 종전 논의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유럽 정상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17일 긴급 회동해 미·러 간 종전 협상 대응책을 논의했다. 회동 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강요된 평화는 거부한다"고 했고,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 없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결정은 없고, 유럽 없이는 유럽에 대한 결정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에 모인 유럽 지도자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엑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도 소위 '거래 상대'로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 내내 끈끈한 유대를 과시했던 미국과 유럽 간 동맹이 차차 금이 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일단 "우크라이나에 평화협정을 강요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한다.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는 17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국제사회의 종전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나름의 행보에 나섰다. 아랍에미리트(UAE)를 시작으로 중동 국가들을 순방 중인데 트럼프 재집권 후 미·러 간 중재자를 자처한 사우디아라비아도 방문할 것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을 둘러싼 각국의 외교전은 지금 국제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유와 정의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뒷전이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가치 동맹에 앞서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좇는 '트럼프 효과'가 이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위해 미군을 배치하는 대가로 우크라이나 희토류 자원의 50% 지분을 요구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강대국이 침략당한 국가는 안중에도 없이 종전 과정에서 이권을 챙기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우리에게도 우크라이나전은 수천㎞ 떨어진 대륙에서 벌어지는 먼 전쟁이 아니다. 안보와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얽혀 있어 국익과도 직결된다. 그간 국내 상황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너무 한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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