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열정 극단] ② 시대성으로 승부…지역의 자부심이 되다
기사 작성일 : 2024-06-20 09:01:16

[※ 편집자 주 = 척박한 지방의 문화 환경 속에서 63년간 전주시민과 웃고 울며 외길을 걸어온 창작극회가 180회 정기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지역 연극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관객과 소통해온 전북의 유일한 창작극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송고합니다.]


창작극회 60주년 기념 공연 '꿈속에서 꿈을 꾸다'


[창작극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주= 나보배 기자 = 전북에서 가장 오래된 극단인 창작극회의 역사는 곧 전북 연극의 역사이기도 하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故) 박동화(1911∼1978년) 선생은 전북에 연극공연단체가 전무했던 1960년대에 연극에 대한 갈증을 담아 창작극회를 창립했다.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는 이런 박동화 선생의 열정과 도내 연극계의 중흥기를 이끈 노력을 기리기 위해 '박동화연극상'을 제정, 매년 시상하고 있다.

63년이 흐른 지금도 후배연극인들은 창작극회만의 색깔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故) 박동화


[창작극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북대 극예술연구회에서 태동…'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로 창립공연

창작극회는 1961년 2월, 전북대 극예술연구회가 중심이 돼 30여명으로 시작했다.

전북 연극의 대부로 불리는 박동화 선생은 전북에 연극공연단체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했고, 이후 이들이 전문극단인 창작극회를 창립했다.

특히 처음 무대에 올린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박동화 선생의 대표작이다.

화해와 용서를 통해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비극을 극복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이후 1964년 무대에 오른 '두 주막'은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과 연기상(배우 오대식)을 수상해 창작극회 출발에 가속 페달을 선사했다.

1970년대에는 TV의 발달로 연극계 전체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창작극회는 그 이름처럼 창작극을 고집하며 '산천초목', '사는 연습', '등잔불' 등을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전북연극협회가 펴낸 '전북연극사 100년'은 1960∼70년대 창작극회를 두고 "질박한 전라도의 토속적 분위기와 사투리를 무대화했다"며 "지역성을 담보로 한 지역 극단의 몫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고 평했다.


1970∼1990년대 창작극회 공연책자


[창작극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극인들 '쥐꼬리 월급' 모아 창작소극장 건립

1986년 전주시립극단이 결성되면서 창작극회 단원들이 시립극단으로 합류했다.

자연스럽게 창작극회의 공연이 줄면서 2∼3년간 침체기를 맞는다.

하지만 연극인들 사이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창작극회를 제대로 부활할 필요가 있다'는 필요성이 제기됐고, 재건 움직임이 꿈틀거렸다.

이는 전주시 완산구 동문예술거리에 자리한 창작소극장 건립으로 이어졌다.

조민철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장은 "창작극회의 63년 역사는 창작소극장 건립 전후로 나눠도 이견이 없을 정도"라며 "창작소극장의 건립은 더 많은 볼거리가 쏟아지던 시기에 연극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자구책 중 하나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연극인들은 창작소극장 건립을 위해 월급을 쪼개 보탰다. 창작극회 출신 시립극단 단원들은 매달 3만∼4만원의 비상근 월급을 모아 소극장 설립에 돈을 댔다.

그렇게 어렵게 문을 연 창작소극장은 1997년 누전으로 인한 화재라는 시련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조 회장은 "당시 후배 연극인들이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모금을 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한 푼이라도 보탤 수 있다는 걸 행복으로 알던 때였다. 돌아보면 참 순수했던 시절이었다"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시 창작소극장을 일으켜 세웠고, '창작 10-2번지의 다시 서는 희망' 특별공연을 하며 재기의 발판을 확보했다.


창작소극장에서 '시계가 머물던 자리' 공연 중인 배우들


[창작극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삼례 슈퍼 사건 다룬 '귀신보다 무서운' 등 시대상 담아 호평

2000년대에도 창작극회는 지역 연극계에서 우위를 잡고 활동을 넓혀갔다.

비전향 장기수의 아픔을 깊이 있게 풀어낸 '상봉'은 2003년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과 연출상, 희곡상(최기우 작가), 연기상(배우 김순자)을 쓸어 담았다.

또 1980년 광주를 그린 '오월의 천사',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을 담은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 독일 천재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작품 '보이첵'을 각색한 '외노자 뚜야' 등 시대상을 반영해 참신한 무대를 만들고 있다.

특히 2016년 무대에 올린 '귀신보다 무서운'은 경찰과 검찰의 부실 수사와 진범 논란을 빚었던 이른바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을 다뤘다.

연말이면 해마다 같은 자리에 수천만 원을 두고 홀연히 사라지는 전주시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도 창작극회가 여러 번 무대에 올리면서 지역과 호흡했다.

얼굴 없는 천사는 2011년 '노송동 엔젤', 2014년·2017년 '천사는 바이러스', 2020년·2021년 '천사는 그 자리에' 등으로 여러 번 관객을 만났다.

실제 이 천사의 선행은 작년까지 24년째, 25차례에 걸쳐 이어졌으며, 누적 성금액은 9억6천479만7천670원에 달한다.

홍석찬 창작극회 대표는 "창작극회는 누군가의 작품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창작역량을 강화한 우리만의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싶다"며 "지금껏 그래왔듯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재조명하고, 시대의 아픔이나 그늘진 곳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