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멈춘 가자] '수류탄 대신 꽃을' 뱅크시 벽화 인상적…휴전현장 일주일
기사 작성일 : 2025-01-23 11:01:05

수류탄 대신 꽃을


(베이트사후르=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의 분리장벽 부근 주유소에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의 벽화가 있다. 2025.1.23

(텔아비브·베이트사후르= 김동호 특파원 = "이 아랍어로 된 도장은 어느 나라 것이죠? 레바논에 왜 갔죠? 몇 차례 방문했나요? 거기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공항에 오는 동안 이 짐가방을 다른 사람 손에 넘겨준 적이 있나요?"

22일(현지시간) 오전 이스라엘 중심도시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국제공항.

기자는 검색대에서 공항 직원의 질문 세례에 답하느라 출국길 수십분간 진땀을 흘렸다. 한 달 전 취재를 위해 레바논을 방문한 것과 관련, 여권에 찍힌 '적성국' 레바논 도장이 문제였다.

이스라엘에 체류하는 내내 느낀 현지인들의 '안보 강박증'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6주간 휴전 협상 타결을 계기로 지난 16일부터 이날까지 꼭 일주일간 이스라엘, 가자지구 접경지, 요르단강 서안 등지를 직접 취재했다.

기자는 지난 17일 가자지구 접경지 레임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포격 소리를 약 20차례 들었다. 이튿날에는 텔아비브 시내를 지나다가 요르단강 서안 출신 남성이 막 이스라엘 민간인을 대상으로 흉기를 휘두른 테러 현장을 우연히 목격했다.


방공호


(텔아비브= 김동호 특파원 =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마련된 방공호 표지판. 2025.1.23

기차역, 식당가, 쇼핑몰 등 도심 곳곳 소총을 어깨에 멘 전투복 차림 군인들의 모습도 이곳이 분쟁지역 한 가운데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지난 19일 우여곡절 끝에 휴전에 돌입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긴장감을 전혀 늦추지 않았다.

이틀 뒤인 21일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새 대테러 군사작전 '철벽'(iron wall)을 개시했다. 비록 가자지구에서 잠시 교전을 멈췄지만 '철검'(iron sword)이라 이름 붙였던 하마스 소탕전을 아직 끝낼 수 없다는 뜻으로 읽혔다.

1948년 건국 이후 사방을 포위한 아랍·이슬람권 나라들과 전쟁을 치른 역사에,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으로 1천200명이 살해당한 생생한 기억까지 더해져 극도로 민감해진 이스라엘인들이 앞으로 얼마나 휴전에 인내심을 계속 발휘할지는 모를 일이다.

이후 15개월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에 4만7천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팔레스타인도 전의를 잃지 않은 듯하다.


이스라엘 군인


(베에리= 김동호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 견학 중인 현지 군인들. 2025.1.23

휴전에 환호하며 거리로 나선 가자지구 주민들은 하마스의 초록색 깃발과 함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노란 깃발을 같이 흔들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겨눈 무력행동이 '점령'에 대한 '저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자는 취재 일정 중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관할인 요르단강 서안의 베이트사후르를 잠시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제닌, 툴카렘 등 지역보다는 군사적 충돌이 적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다.

근처 베들레헴은 예수의 탄생지로 널리 알려졌지만 전쟁 발발 이후로는 관광객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베이트사후르, 베이트잘라 등 팔레스타인 구역에 접근하니 이스라엘이 2000년대 세운 총연장 700여㎞의 콘크리트 분리장벽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 구간은 높이가 9m에 이른다.

장벽 인근 한 주유소 벽면에 커다란 그림이 있다. '얼굴 없는 예술가'로 불리는 영국 작가 뱅크시의 2003년 작품인데, 복면 남성이 꽃다발을 던지려는 순간이 묘사됐다.

그림이 그려진지 2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고 있다.


평화 바라는 벽화


(베이트잘라=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의 분리장벽. 202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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