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간첩혐의' 한국인 선교사 어느덧 구금 1년
기사 작성일 : 2025-01-29 08:00:59

레포르토보 구치소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모스크바=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한국인 백 모씨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지 1년이 지났다.

백씨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첩 혐의를 받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된 것은 지난해 1월 15일(현지시간). 그해 2월 백씨는 조사를 위해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구치소로 이송됐고 29일 현재까지 그곳에 구금돼 있다.

백씨의 구금 기간은 약 3개월 단위로 지속해서 연장되고 있다. 백씨는 구금 연장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지난해 10월 러시아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백씨가 처음이다. 하지만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간첩 활동을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러시아 타스 통신은 백씨가 국가 기밀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씨 관련 사건 자료는 러시아에서 '일급기밀'로 분류돼 철저히 비공개로 처리되고 있다. 백씨 구금 사실이 알려진 것도 체포된 지 약 두 달이 지나서였다.

선교사인 백씨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북한 노동자 지원, 탈북민 구출 등 북한 관련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은 지난해 4월 처음으로 백씨와 영사 접견을 한 뒤 주기적으로 백씨를 면회하고 필요 물품을 제공하고 있다. 이도훈 주러대사도 레포르노포 구치소를 찾아 백씨와 면담했다.

레포르토보 구치소는 러시아에서도 가혹한 환경으로 악명 높다. 백씨는 다른 수감자들과 한방을 쓰고 있으며, 면회 때 받은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씨의 변호사인 드미트리 이바노프는 지난해 10월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백씨의 구치소 생활에 대해 건강 문제로 약을 제공받고 있으며 언어 문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바노프 변호사는 백씨가 간첩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가 인정되면 최장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백씨가 언제 재판을 받을지는 아직 기약이 없다.

백씨와 비슷하게 간첩 혐의로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구금됐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에반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경우 14개월간 구금 상태로 있다가 지난해 6월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은 체포 장소인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진행됐다.

러시아 법원은 지난해 7월 19일 무죄를 주장하던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간첩 혐의를 인정해 징역 16년형의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게르시코비치는 판결이 선고된 지 10여일 만에 풀려났다. 지난해 8월 1일 러시아와 미국 등 서방이 단행한 수감자 맞교환을 통해서다. 당시 게르시코비치를 포함해 러시아에 수감돼 있던 미국인, 독일인, 러시아인 등 16명이 석방됐고, 그 대가로 서방 국가에서 복역 중이던 러시아인 8명도 풀려났다.

이런 사례로 미뤄 일각에서는 백 씨도 러시아의 외교 협상 카드로 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백 씨의 신병 문제를 한국과 러시아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 정세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러관계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급속도로 악화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에 참여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에 대응해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면서 한러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국내에서는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 탈북자 지원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백씨를 체포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급변하는 국제 정세도 지켜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이 타결되고 서방의 대러 제재도 해제될 경우 한러관계도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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