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빈씨 유튜브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이승연 기자 = "자, 이렇게 월급날엔 돈뭉치를 만지며 한껏 즐겨줘야 합니다. 이게 바로 현금 생활의 묘미 아닐까요?"
20대 직장인 박수빈 씨는 지난해부터 '현금 챌린지'를 기록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구독자 수는 3천800여명이다.
현금 챌린지는 월급을 인출해 직접 세어보고, 주 혹은 월 단위로 계획한 예산 내에서 돈을 절약하는 생활을 말한다.
박씨는 설 연휴를 앞두고 와 통화에서 "스무살 때부터 돈을 벌었는데 20대 중반이 되어도 돈이 모이질 않았다"며 "물가는 오르고 제 나이에 요구되는 사회적 자산 기준이 높아지면서 저축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고물가 시대를 맞아 청년들 사이에서 절약형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신용카드 대신 현금으로만 생활하는 현금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현금 챌린지는 일찌감치 미국에서 '캐시 스터핑'(Cash stuffing)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월세, 식료품 등 지출 목록에 따라 봉투(바인더)를 마련해 현금을 채워 넣고 정해진 기간에 그 한도 내에서 지출하는 것을 뜻한다. 현금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과소비나 충동구매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확산했다.
박씨는 직접 현금을 만지고 세어보는 것이 신용카드를 이용한 디지털 방식의 결제보다 직관적이고 실제로 돈을 쓴 느낌을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금 생활을 시작하기 전과 비교해 생활비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며 "일주일에 쓸 돈을 미리 정해두니 소비 욕구 통제가 용이하고, 저축한 돈을 보면 성취감이 들어서 더 모으고 싶어진다"고 했다.
"현금 쓰면서 생활비 아껴요"
[SNS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다만 현금을 받지 않는 가게가 늘어나고, 계산 후 매번 거스름돈을 확인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도 있다.
박씨는 "친구들끼리 밥을 먹고 제가 한꺼번에 결제해야 하는 상황, 갑작스럽게 많은 돈이 필요한 상황, 가게에서 현금을 받지 않는 상황 등 난처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제 경우 비상용 체크카드를 들고 다니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했다.
박씨에 따르면 체크카드로 쓰는 돈을 육안으로 직접 보기 위해 페이크머니(가짜 돈)를 마련해 현금 바인더에 넣고 카드를 긁을 때마다 이를 차감하는 이들도 있다.
"체크카드로 쓰는 돈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돈을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 절약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죠"
박씨는 현재 현금 챌린지로 얻는 스트레스보다 재미가 더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챌린지를 시작한 이후 초반에는 소비 욕구를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3~4개월 차부터는 저축하는 성취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의 액수를 저축하는 등 자기만의 재미를 찾는다면 더 지속 가능한 현금 생활을 할 수 있다. 현금 챌린지가 점점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현금 바인더가 판매돼 고르는 재미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현금 바인더를 예쁘게 꾸미거나, 돈을 세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를 담은 ASMR 영상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절약을 넘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무지출 챌린지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출을 완벽히 통제하는 '무지출 챌린지'도 있다.
1년 넘게 무지출 챌린지를 하고 있는 직장인 김해린(30) 씨는 "점심시간에 먹을 도시락을 챙겨 다니고, 커피는 회사 탕비실에 있는 것으로 먹는다"며 "뿌듯하지만 지속 가능한 절약을 위해서 적당히 쉬는 기간도 두고 있다"고 했다.
무지출 챌린지는 일정 기간 필수 지출을 제외한 모든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절약 생활을 말한다.
김씨는 "챌린지 초반에는 주중에 극단적으로 절약하다 보니 보복심리가 작용해 주말에 큰돈을 지출하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보다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빵 무료 쿠폰에 3만여명 대기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기 구독 서비스를 모두 끊거나 교통비를 줄이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직장인 송모(31) 씨는 이달 초 통신사 멤버십 앱에서 제공하는 식빵 무료 쿠폰을 접속 40분 만에 받을 수 있었다. 해당 빵은 시중에서 3천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송씨는 "줄 서서 먹는 유명한 빵집도 아니고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파는 일반적인 우유식빵이었다"며 "얼마나 살기 팍팍하면 3만명 넘는 사람들이 식빵 하나 공짜로 먹겠다고 30분 넘게 기다리나 싶었다"고 했다.
송씨는 새해를 맞아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OTT(동영상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를 모두 끊었으며,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땐 자전거를 이용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전했다.
고물가 속 설맞이
진연수 기자 = 설 명절을 앞둔 지난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2025.1.30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명하게 지출하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고 절약 방법을 공유해가며 즐거움을 찾는 건 매우 전략적인 행동"이라며 "가계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작정 욕구를 통제하기보다 자신이 만족을 얻는 데에는 돈을 쓰면서 균형 잡힌 지출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청년 취업률이 낮고 경기가 얼어붙어 있어 한동안 절약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