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미 AP통신과 백악관의 갈등
기사 작성일 : 2025-02-15 06:00:56

미 뉴욕에 있는 AP통신 본사[AP 자료사진]

최재석 선임기자 = 미국의 뉴스통신사 AP는 세계 언론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100여 개국에 250여개 지국을 운영하며 매일 수천건의 기사와 수십만 건의 사진·영상 뉴스를 생산해 전 세계 언론사에 제공하고 있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그간 퓰리처상을 59차례나 수상했고 특히 그 가운데 사진 부문 수상이 36차례를 차지한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노근리 학살사건'을 탐사 보도해 2000년 이 상을 받았다.

AP통신은 1846년 뉴욕에 기반을 둔 5개 신문사가 뉴스를 더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공유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협동조합 형태의 뉴스통신사가 그 출발이다. 지금은 미국의 1천500여개 언론사가 조합원으로 참여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외부 투자자나 특정 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언론계에서 높은 신뢰도를 인정받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다. AP가 정확하고, 사실에 기반한 공정한 보도를 핵심 가치로 삼아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는 보도 방침을 고수할 수 있는 데는 이런 소유구조가 한몫하는 것이다.

AP통신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반부터 백악관과 갈등을 빚고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있는 멕시코만 표기 변경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을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AP가 기존 표기를 고수하자 AP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제한하는 보복 조치를 한 것이다. 그러자 AP 측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라며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은 "AP의 표기법을 문제 삼아 백악관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독립적인 뉴스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심각히 저해할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미 수정헌법 제1조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백악관 측은 "백악관 취재는 특권이며, 어떤 기자가 취재할지 결정하는 건 우리의 권리"라고 맞섰다. 미 언론계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AP가 멕시코만 표기를 고집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미국 내에서만 효력을 갖는 데다 400년 이상 멕시코만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통용돼 국내외 독자들에게 친숙한 점을 고려해 표기를 바꾸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미국만이라는 이름이 전 세계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와 AP 간 갈등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통상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AP 기자가 가장 먼저 질문을 하는 게 관례였지만 이것도 깨졌다. 캐롤라인 레빗 신임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첫 브리핑 때 온라인 매체 기자에게 첫 질문 기회를 줬다. 주류 언론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트럼프가 재집권하자마자 전통적인 언론보다 온라인 매체와 인플루언서를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 끝이 어디일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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