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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계엄 당시 상황 메모
12·3 비상계엄 당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통화한 내용을 정리해서 기록한 메모. 2025.2.13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동환 기자 = 노상원 전 국군 정보사령관의 수첩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메모가 비상계엄 수사와 재판 국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노상원 수첩'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 다수의 정치·사회계 인사가 적혀있고, "수거" 등 충격적 문구도 파편적으로 담겼다. '홍장원 메모'에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불러줬다는 정치인 '체포 명단'이 적혀있다.
계엄 기획 '비선'으로 지목된 노 전 사령관은 수사 단계 때 수첩 작성 경위에 입을 열지 않았다. 단순히 자기 생각인지, 계엄 준비 정황인지 등이 규명되지 않았다. 결국 검찰 공소장에서는 빠졌다.
홍장원 메모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주목받고 있다.
홍 전 차장은 심판정에서 메모 작성 상황을 구체적으로 얘기했는데, 상관이었던 조태용 국정원장이 증언 신빙성을 흔드는 발언을 내놓아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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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사본
가 입수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사본. 2015년 12월 29일 자 분량에 '바이오시밀러' 관련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붉은 타원 표시)이 눈에 띈다. 2017.2.19.
◇ 핵심증거 안종범 수첩…성완종 리스트는 불인정
과거에도 수기(手記) 증거가 '스모킹건'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대표적 사례가 '안종범 수첩'이다. 박근혜 정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014년∼2016년 작성한 63권 분량의 업무수첩은 국정농단 수사에서 핵심 증거로 여겨졌다.
대통령 지시 등을 받아적은 이 수첩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사초'(史草)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지시 중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불법 청탁을 한 정황,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와 독대에서 나눈 대화 등을 추정케 하는 내용 등도 담겼다.
박근혜·최순실 재판에서는 증거능력이 일부 인정됐지만,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는 전문증거(체험자 직접진술이 아닌 전해들은 말 등 간접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외에 최순실씨가 '문고리 3인방' 이름 이니셜과 격려금 액수를 적어둔 '최순실 포스트잇',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인 '김영한 비망록'도 있었다.
논란을 불렀지만 무죄가 된 사례도 있다.
'성완종 리스트'가 대표적이다. 2015년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권에 금품을 전한 정황을 적은 메모로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이완구 총리 등 박근혜 정부 인사들 이름이 적시됐다. 그러나 뒷받침할 자료가 부족해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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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 메모한 '문고리 3인방' 격려금 내역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메모한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 명절·휴가비 내역. 메모에는 BH라는 문구 옆에 J(정호성), Lee(이재만), An(안봉근)을 뜻하는 이니셜과 함께 지급 액수 내역이 적혀있다. 2018.1.4 [서울중앙지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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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
[ 자료사진]
◇ 입닫은 노상원의 수첩…적극 진술 홍장원 메모
수첩이나 메모는 파급력이 크지만, 증거 인정은 까다롭다.
계엄 국면에 등장한 두 기록도 향후 증거능력과 증명력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전망이다. 증거가 될지, 더 나아가 유무죄 증명 자료로 쓸 수 있는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종범 수첩은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있어 증거로서 신빙성이 높았다"며 "노상원 수첩은 내용이 단편적이라 본인 진술이 필요한데, 수첩 자체만으로 증거로 확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노상원 점집'에서 수첩을 확보한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적 감정을 의뢰했지만, '감정 불능' 판정을 받았다. 직접 작성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당사자가 수첩 소유나 작성 경위를 진술하는 게 중요하다.
악필이거나 단어들이 파편적으로 있을 경우 작성자가 진술하지 않는 한 해독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홍장원 메모의 경우 4종류가 있다고 조 국정원장이 밝힌 상태다. 이에 홍 전 차장은 첫 메모는 여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들은 내용을 받아적은 것이며, 이후 버전은 보좌관과 함께 정리하고 기억을 복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메모하는 요즘 수기 메모의 증명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전 수사' 기법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포렌식으로 웬만한 기록과 동선을 들춰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기소하면서 방첩사 체포조 의혹과 관련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증거로 제시했다. 계엄을 앞두고 합동수사본부 조직을 계획하는 정황이 담긴 여 전 사령관의 휴대전화 메모도 공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