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출구 '안갯속'
이진욱 기자 [ 자료사진]
김잔디 기자 = 정부가 27년 만에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면서 시작된 의정 갈등이 올 한해 의료계를 넘어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올해 2월 정부가 의대 '2천명' 증원을 발표하자 대학병원에서 수련하던 젊은 의사들이 집단 사직했고, 의대생들은 동맹휴학으로 정부에 맞섰다.
사상 초유의 의료공백 사태와 극심한 의정 갈등은 만 10개월이 가까워지도록 해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결국 해를 넘길 전망이다.
의료계가 대학입시 진행 와중에도 여전히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는 가운데 비상계엄과 탄핵 후폭풍까지 더해지면서 의정 갈등의 출구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 의대 증원에 의료계 집단 반발…의사 떠난 병원에 환자만 '끙끙'
올해 2월 정부는 2025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5천58명으로 2천명 늘린다고 발표했다. 2006년 이래 의대 정원이 3천58명 수준으로 동결되면서, 의사 부족이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초래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가 증원을 포함해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보상 강화, 의료사고 법적 부담 해소 등 '의료개혁 패키지'를 들고나오자 의료계는 크게 반발했다.
의료계는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필수의료 분야 종사자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면서 원가 이하 수준인 필수의료 수가를 정상화하고 의료사고의 법적 부담을 해소하는 게 먼저라고 주장했다.
젊은 의사들의 반발은 특히 거셌다.
대학병원 등 큰 병원에서 수련하던 전공의들은 2월 중순부터 집단사직하고 의대생들은 수업을 거부했다.
정부는 병원에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를 금지하고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을 허용하지 않는 등 강경하게 맞서면서 '강 대 강' 대치가 격화했다.
의정 갈등 출구 '안갯속'
이진욱 기자 = 대학들이 2025학년도 수시 의대 합격자 발표를 하는 가운데 의대생과 교수단체가 전국 40개 의대 총장을 향해 신입생 모집 절차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은 11일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 모습. 2024.12.11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진료와 수술이 일제히 줄었고, 한때 주요 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대란 이전부터 있던 '응급실 뺑뺑이'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공의 없는 병원'에 애꿎은 환자들의 피해만 커졌다.
의료대란이 상반기를 넘기면서 정부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고 행정처분도 하지 않겠다며 유화 제스처를 취했지만, 전공의들은 증원을 백지화하지 않는 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이 지난 9월 수련에 복귀할 수 있도록 '특례'를 적용하고, 향후 전문의 취득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하겠다고도 약속했으나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최근 마감된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 역시 지원율이 8.7%에 그쳤다.
◇ 입장차 여전…"2025년 모집 중지" vs "2026년 원점서 논의"
의료대란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의료계와 정부는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평행선이다.
애초 2천명을 늘리겠다던 정부는 지난 5월 대학별 교육 여건에 맞춰 2025학년도 증원 규모를 1천509명으로 확정한 후 입시를 진행했다.
입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의료계는 대규모 증원으로 인한 의학교육의 질 저하 등을 우려하며 증원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했다.
정부는 대학이 사전 공표한 전형계획·모집 요강과 달리 전형을 운영하면 학생·학부모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고, 대학 역시 법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는 내년도 입시는 그대로 진행하고 2026학년도 정원을 원점에서 논의하자는 절충안도 내봤지만 의료계는 물러서지 않은 채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의정갈등 해소를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야당과 전공의 단체 등 없이 '반쪽'으로나마 출범하며 기대감을 모았지만, 팽팽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의료계 단체의 탈퇴로 결국 20일 만에 좌초됐다.
의정갈등 장기화…전공의 돌아올까
김성민 기자 [ 자료사진]
◇ '처단' 계엄 포고령 더해져 의정 관계 악화일로
가뜩이나 교착 상태인 의정갈등에 '비상계엄 사태'가 더해지며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특히 '미복귀 전공의 처단'이 담긴 계엄 포고령에 대한 의료계 반발이 거세지면서 의정 대화의 창구가 완전히 닫힌 모양새다.
의료계는 지난 3일 밤 포고령에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조항이 담긴 데 대해 거세게 항의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학회 등은 일제히 '처단'이라는 표현에 반발하면서 현 정부와는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정 관계가 한층 더 경색된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 혼란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의정 갈등은 앞날을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당분간 의미 있는 의정 대화가 이뤄지긴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대화할 상대가 없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