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첫날부터 '北핵보유국' 언급 파장…비핵화 목표 흔들리나
기사 작성일 : 2025-01-21 14:00:04

트럼프 취임식을 찾은 지지자들


(워싱턴= 김동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한 20일(현지시간)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취임식을 생중계하는 '캐피털 원 아레나' 경기장에 입장하려고 줄을 서고 있다. 2025.1.21

이상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 첫날부터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라고 지칭해 파장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구체적인 의중은 불확실하지만, 자칫 한미가 견지해왔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날 퇴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어떤 위협을 지목했냐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그게(북한이) 엄청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뉴클리어 파워다"라고 말했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도 지난 14일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칭했는데, 미국의 최고 지도자가 임기 첫날부터 똑같은 표현을 쓰면서 트럼프 정부가 북한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뉴클리어 파워'라고 언급한 게 단순히 북한이 군사적으로 핵능력을 보유했다고 평가한 것인지, '핵보유국'이라는 정치·외교적 함의를 인식하고 발언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간 북한이 현실적으로 핵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 일부에서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는 있어 왔지만, 정치·외교적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한 것으로 인정하는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5곳이다.

핵보유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공인받진 못했지만 사실상 핵을 가진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까지 포괄한 개념이다. 이들 국가는 핵 보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과 다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이들 국가와 같은 반열의 '핵보유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더는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5일 상원 외교위의 인사청문회에서 북핵과 관련, "어떤 제재도 (핵)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서 제재 무용론으로 여겨질 수 있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을 하자마자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칭하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과거 관계가 좋았다고 밝히는 등 '러브콜'을 보내면서 북한과 다시 대화에 나서리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비핵화를 목표로 한 '빅딜'이 아닌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한 채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만 줄이는 군축협상 등 '스몰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대미 소통 채널을 가동하는 한편 비핵화 목표를 거듭 강조했다.

국방부 전하규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지속 추진돼야 한다"며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 국제사회와 계속 긴밀히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한미 양국은 그동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대해 확고하고 일치된 입장을 견지해왔다"면서 "정부는 미국 새 행정부와 긴밀한 한미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정부 입장을 트럼프 정부에 설명하고 조율해야 할 중대 국면에서 국내 정치 문제로 리더십이 흔들려 대미 외교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상 김정은과의 만남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이라며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너무 많이 양보하지 않도록 우리의 입장을 말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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