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국가산단] ② 부활 꿈꾸지만…활발한 업종전환·지방투자 유치 과제
기사 작성일 : 2025-02-09 07:01:15

거제해양플랜트 국가산단 예정지였던 거제 사등면 사곡리 일대


[거제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슬기 기자 = 정부는 국가산업단지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다시금 부활시킨다는 청사진 아래 산단의 혁신을 가로막는 '킬러 규제'를 혁파하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일부 산단의 환경 개선과 투자 유발 효과는 있었지만, 전반적인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현재 침체한 국가산단 문제를 해결하려면 글로벌 첨단산업 혁신을 따라잡기 위한 업종 전환이 필수적인 데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고령화 등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흐름은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이런 환경 속에 대기업들의 생산 시설 해외 이전이 가속화할 경우, 수도권 외 지방 국가산단이 한국식 러스트 벨트(rust belt·미국 오대호 인근의 쇠락한 공업지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여수산단


[전남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통 제조업이 국가산단 96% 차지…청년들에게 매력 없는 산단 입지

9일 한국산업단지공단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1천306개 산단에는 약 12만4천여개의 기업이 입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계·금속·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이 96.4%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IT(정보통신) 기기 비중은 3.6%에 불과했다.

이들 기업은 제조업 생산의 62.6%(1천249조원), 수출의 66.9%(4천199억달러), 고용의 49.9%(207만명)를 차지하면서 한국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 경제개발 정책과 함께 조성된 울산·여수 등 주요 산단을 비롯해 착공 후 20년이 지난 노후 산단이 지난해 3분기 기준 총 492개에 달한다.

대부분 기계, 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 생산 시설을 위주로 개발됐기 때문에 디지털·IT 등 첨단 신산업이 입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물류와 원자재 공급을 원활하기 위해 지방·해안가 등에 인접한 입지도 고급 전문 인력과 청년 근로자들을 유인하기엔 매력이 떨어진다.

2023년 6월 기준 노후 산단의 인구 1명당 편의시설을 보면 음식점 18개, 카페 11개, 편의점 3개, 병원 1개, 체육 시설 1개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이 음식점 338개, 카페 45개, 편의점 16개, 병원 18개, 체육 시설 39개인 점과 비교하면 노후 산단의 편의·복지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배진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와 통화에서 "산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인력 공급인데, 첨단업종의 경우 청년이나 고도 기술 인력들은 도심 입지를 지향한다"며 "과거 물류나 원재료 조달을 위해 국가산단들이 항만을 끼고 있는 물류 요충지 위주로 입주했지만, 기술과 인력 중심으로 공업입지의 (요건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미 국가산업단지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경북권본부 제공]

◇ 정부 "입주 업종·토지 용도·매매 임대 규제 혁파"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30년간 유지해온 산단 관리 제도를 손봤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가 2023년 8월 내놓은 '산업단지 3대 킬러 규제 혁파'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 입주 업종 ▲ 토지 용도 ▲ 매매·임대 규제 등 20건의 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어두침침한 '공단'에서 탈피해 기업이 투자하고 청년이 찾는 매력적인 '산업캠퍼스'로의 탈바꿈을 꾀하고자 했다.

정부는 첨단·신산업 분야 기업이 노후 산단에 입주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 위해 경직적인 입주 업종 제한을 풀었다.

규정된 입주 대상 기업이 아니더라도 전력·용수 등 기반 시설의 허용 범위 내에서 산단 입주가 가능하도록 업종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또한 제조업을 지원하는 법률·회계·세무·금융 등 서비스업도 산단에 들어갈 수 있게 했다.

기업의 투자 장벽도 낮췄다.

공장 설립 후 5년간 매매·임대를 제한하는 규제를 완화해 산단 기업이 공장을 금융·부동산투자회사 등에 매각한 뒤 임대하는 자산유동화를 허용했다.

산단의 환경과 편의 시설을 개선해 '문화와 여가가 어우러진 산단'으로의 변화를 모색했다.

배진원 부연구위원은 "기존 산단은 개발 계획에 근거하고 있고 이미 기업들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업종, 환경이나 인프라 등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고민이 많지만 환경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업종 제한 범위나 다양한 규제를 풀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도권에 비해 지방 산단은 업종 규제가 보다 유연하기 때문에 기업 입지에 있어 업종상의 제약보다는 인력, 인프라, 앵커 기업의 확보가 더 큰 과제라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용인= 김광호 기자 = 경기 용인시는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기술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와 경기도, 용인시, SK하이닉스가 공동으로 약 1조원을 투자하는 첨단반도체 테스트베드(미니팹) 구축 사업이 올해 본격 시작된다고 6일 밝혔다. 사진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2025.1.6 [용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향후 과제는…활발한 업종 전환·지방 투자유치 활성화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기술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국가산단의 업종 전환의 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30년께 늘어나는 자동차 폐배터리 처리 문제를 대표적으로 지적한다.

전기차 전환이 '예견된 미래'로 다가온 가운데 국가산단에서 자동차 폐배터리를 수용할 수 있는 원료재생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최준석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광양·새만금 등에 폐배터리 처리 업체를 집중적으로 육성시키고, 폐배터리를 수거하는 전처리 업체들도 전기차 수요가 높은 수도권에 많이 포진해야 한다"며 "범부처가 안전 문제를 담보한 가운데 원료재생업도 산단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국가산단에는 기업들의 투자 유치가 쉽지 않다는 점도 과제로 거론된다.

정부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의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첨단산업 특화단지 15곳을 국가산단으로 조성했지만 용인·평택을 제외한 비수도권에서의 사업 진행은 입주기업 수요 부족으로 사실상 답보 상태다.

최준석 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대전도 나노·반도체 특화단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여기에 들어온 기업들을 찾기 쉽지 않다"며 "정부가 제조업 부흥의 그릇은 만든 후 콘텐츠를 채울 투자 유치 측면에서 지방은 더욱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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