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된 민법 전면개정 시동…계약법 200개 조문 개정 입법예고(종합)
기사 작성일 : 2025-02-07 12:00:31


[ 자료사진]

김다혜 기자 = 법무부가 1958년 제정 이후 67년간 큰 틀을 유지해온 민법 전면 개정을 위해 본격적 절차를 시작했다.

민법 현대화를 위한 개정은 재산법 분야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추진된다. 우선 첫 단계로 주로 재산관계를 규율하는 총칙과 물권·채권 분야의 개정안이 마련됐다.

법무부는 7일 사법(私法) 분야의 기본법인 민법 중에서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는 법률행위, 채무불이행, 손해배상, 계약의 성립·효력·해제, 담보책임 등 계약법 규정에 관한 조문 200여개를 고친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그간 판례와 학설로 축적된 해석과 법리를 조문에 반영해 실제 규범으로서 역할을 높이고, 새 규범을 도입하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분쟁 해결과 권리 구제 방식을 현대화하고, 쉬운 표현으로 국민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법률을 만드는 데 역점을 뒀다.

우선 금리, 물가 등 경제 사정 변화에 따라 법정이율이 조정되는 변동이율제를 도입한다. 현행 민법상 법정이율은 고정적으로 연 5%다. 그러나 경제 상황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법정이율리 고정돼 있는 것은 채권자, 채무자의 이익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돼왔다.

개정안은 채권 이율을 다른 법률 규정이나 당사자 약정이 없으면 한국은행 기준금리, 시장에서 통용되는 이율, 물가상승률, 그 밖의 경제 사정의 변동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개정안에는 법률행위 취소와 관련해 심리적 의존 상태나 긴밀한 신뢰 관계 속에 부당한 간섭을 받아 행해진 계약 등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부당위압' 법리가 도입됐다.

이른바 '가스라이팅'이나 종교 지도자와 신도, 간병인과 환자 등 심리적으로 강하게 의존하는 관계에서 그 영향을 받아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고려한 것이다.

부당위압 법리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영미법계 다수 국가가 채택한 법리다. 그러나 대륙법계 전통인 우리 민법에도 이 법리를 도입해 규정을 신설했다.

계약 성립 후 중대한 사정 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동안에는 판례로 계약의 해제·해지를 인정해왔지만, 국제 경향을 반영해 계약 수정도 가능하게 했다.

현행 민법에 명문 규정이 없었던 대리권 남용에 관해서도 규정을 신설했다.

대리인이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해 대리 행위를 한 경우 상대방이 이를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에는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

채무 이행 불능의 효과로 통설과 판례가 인정해 온 대상청구권도 담겼다. '대상'은 채무 이행 불능으로 채무자가 얻는 경제적 이익을 말한다. 원래 받게 돼 있던 것을 못 받게 될 때 이것으로 갈음하는 것이다. 매매 목적물이 수용된 경우 매도인이 받는 수용보상금, 보험금청구권 등이 해당한다.

담보 책임에 관한 규정은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졌다. 담보 책임의 출발점을 계약 의무 위반으로 인한 책임으로 한다는 입장에서 전개되는 논리로, 담보 책임이 채무불이행 책임의 특칙임을 명확히 했고, 권리·물건 등 기존 8개의 하자 유형을 2개로 통합해 단순화했다. 물건·권리에 하자가 있으면 매도인의 귀책 사유를 불문하고 구제받을 수 있도록 수단을 확충했다.

채무불이행 제도도 개선해 채무불이행 일반 규정의 '이행할 수 없게 된 때'를 '이행이 이뤄지지 않은 때'로 수정하는 내용도 담았다.

손해 배상의 방법으로 금전 배상 원칙을 유지하되 보충적으로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신체, 건강 침해와 그 밖의 필요한 경우에도 법익이 침해됐을 때 이를 정기금으로 배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국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어려운 한자어, 어색한 표현,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 등은 쉬운 글과 바른말로 수정했다.

법무부는 "국민 생활과 경제활동의 기본법인 민법이 1958년 제정된 이후 67년 동안 전면 개정 없이 거의 그대로 유지돼 변경된 사회·경제·문화적 현실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며 "민법의 전면적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국가적 과제"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은 다음 달 19일까지 이뤄진다.

법무부는 "의견 수렴과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올해 상반기 중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민법 전반의 개정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민법 현대화를 위해 2023년 6월 민법 권위자인 양창수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해 개정안을 마련해왔다. 그동안 친족·상속법 분야는 시대 변화에 맞춰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재산법 분야는 실질적 변화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부 차원의 개정 추진은 이번이 세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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