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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외교장관회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후 한국과 미국의 외교수장이 처음으로 만나 동맹 강화와 대북 공조에 뜻을 모았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뮌헨안보회의(MSC)가 열리는 독일 뮌헨의 바이어리셔호프 호텔에서 40분간 회담을 갖고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 경제 협력 등 현안을 두루 논의했다. 2025.2.15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뮌헨= 김지연 기자 = 한국은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미국과의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트럼프 2기에도 양국이 대북정책과 한미동맹 등에 있어 탄탄한 공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뮌헨안보회의 계기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과 이어진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 기조와 방위 공약 등에서 전임 바이든 정부와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한국 측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만나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협력을 약속했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다. 이 목표는 이후 이어진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서도 문서로 공식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칭하면서 비핵화 의지가 약해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었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한미 공동의 목표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미국 측이 몇 번이나 강조했다면서 "이 정도면 믿어야 한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확고하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또 한미가 향후 대북 정책 수립·이행 과정에서 긴밀히 공조하기로 한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트럼프 2기 대북 정책의 틀을 짜는 데 있어 한국 입장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한 의미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건너뛰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거래하는 것 아니냐는 '패싱' 우려를 어느 정도 덜어냈다고도 볼 수 있다.
미측은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는 "핵 역량을 포함한 필적할 수 없는 미국의 군사력으로 뒷받침되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이 철통같음을 재강조했다"고 밝혔다.
'필적할 수 없는 미국의 군사력'이라는 외교 성명에서는 이례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동맹을 안심시킨 것이다.
조 장관도 같은날 저녁 패널 토론에서 "미국은 한국의 대체할 수 없는 동맹"이라며 "미국의 흔들림 없고 강력한 동맹 공약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한미동맹에 '무한 신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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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외교장관회의
(뮌헨= 김지연 기자 = 조태열 외교부 장관(왼쪽부터), 마크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이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의 바이어리셔호프 호텔 인근의 코메르츠방크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2.16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는 트럼프 시대 한국 외교에 던져질 숙제도 예감할 수 있었다.
한미일 외교장관은 공동성명에서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에의 의미있는 참여에 대한 지지"를 처음 표명하며 한층 선명해진 대중 메시지를 내놓았는데, 대중 강경책을 펼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발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안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점이 바뀐 것은 아니라며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기구에 대해 참여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다른 국가가 대만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극히 민감해하는 중국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나름대로 (중국을) 배려해가면서 노력한 결과"라며 "중국이 크게 감당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무난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최근 미일 정상회담 성명에서는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 지지'라고 표현됐지만, 이번에는 국제기구 범위에 제한을 두는 '적절한'이라는 조건이 한국의 요청으로 추가됐다는 점에서다.
모든 국제기구가 아닌 세계보건총회(WHA)의 옵서버 가입 같은 사례로 한정해 나름대로 대중관계를 관리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풀이된다.
결국 우리로서는 대중 압박에 동참하면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주고받기' 전략을 염두에 두고, 대중 압박에 주파수를 맞추라는 미국의 요구를 가능한 선에서 들어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위협으로 상정해 억지력을 강화하려 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으로서도 중국과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지속적인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일 협의체를 북한뿐 아니라 대중 견제 성격을 강화한 네트워크로 활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한미 회담·한미일 회의에서 "중국 문제에 대해 미측이 기존 입장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일본하고 계속 협력을 요청하는 수준의 논의가 있었다"며 구체적으로 한국의 역할을 요구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외교부 관계자는 공동성명에 포함된 '대만' 문안에 따른 중국 반발 가능성과 관련해 "향후 중국 측과 소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